윤지의 표정이 굳어질 때면 언제나 기분은 바닥을 쳤다. 윤지와 생각이 갈라진 게 언제쯤이었는지, 이제는 되짚어보기도 지칠 지경이었다. 5년 전 술 약속 이후 한동안 윤지는 내 연락을 피했다. 이렇게까지 할 일이라고? 울컥 치솟는 짜증을 눌러내면서도 한 편으로 나는 윤지에게 크게 실망했다. 다른 친구들은 몰라도 윤지는 내 이야기에 공감할 줄 알았다. 여성의 공간에 남자가 들어오는 일을 막아야 한다는 당연한 이야기로 십년 동안 함께 한 친구 사이가 소원해지리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다. 시작은 난민 수용 문제에 대한 뉴스를 공유한 일부터였다. 외국에서 받아들인 난민들이 여자들을 죽이고 다니더라는 말부터, 자신을 여자라고 칭하며 여자 화장실에 들어오려는 남자들을 막아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내 입장에서는 대체 어디가 문제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실제로 그 해로운 남자들에게 죽고 다치는 여성들이 존재하는데. 결국 여성들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이야기 아닌가? 이 이상 범죄에 노출되는 피해자가 늘어나서는 안 되지. 그런 생각과 말들을 놓으면, 윤지는 어김없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셨다. 그러고는 인쇄물을 출력하듯 한마디 했다. 언제나 똑같다. ‘그건,’
‘혐오야.’
“혐오야.”
그럼 그렇지. 이제 윤지는 난민 수용에 관한 이야기와 트랜스젠더를 남자라고 칭하는 게 왜 문제인지 같은 이야기를 늘어놓을 것이다. 5년 전부터 변함이 없었다. 이럴 줄 알고 주문한 청포도 에이드를 한 모금 마시자, 탄산이 식도를 스치며 거북해진 속을 시원하게 뚫어주었다. 역시 이럴 시간에 온라인 모임에 참석할 걸 그랬다. 그럼 적어도 이것보다는 유익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을 텐데. 윤지와 1년 만에 만나기 때문에, 시간이 이렇게 지났으니 어련히 윤지도 자기가 얼마나 잘못 생각하고 있었는지 정도는 깨달았으리라고 일말의 기대를 했기 때문에, 어쩌면 이렇게 또다시 싸우고 실망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아도 십오 년 지기 친구를 그냥 보내고 싶진 않았기 때문에, 한 번은 제대로 토론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윤지와 함께 좋아하는 작품에 대해 떠들고 얼마 전에 산 굿즈를 자랑하는 시간은 무척 즐거웠지만, 이런 이야기가 나올 때면 예상한 듯 기계처럼 말하는 윤지를 볼 때 지쳤다. 윤지는 남미새라서 내 말을 들을 생각이 전혀 없고 내가 살면서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여자를 자칭하는 징그러운 남자들을 왜 혐오하면 안 되는지만 이야기를 늘어놓을 뿐이었다.
손사레를 치고 다시 청포도 에이드를 마시며 말을 끊었다.
“나 있다가 굿즈샵 갈 건데 같이 갈래?”
“넌 항상 내 말은 듣지 않더라.”
“안 갈 거면 됐어. 뭘 그렇게까지 말하니.”
대체 누구 얘기를 하는 건지. 윤지가 어깨를 늘어트리는 걸 보고 다시 기분이 바닥을 치는 걸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