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몸

​어젯밤 애인과 크게 다투고 내가 한 행동들을 화해로 벗어버리기엔
나는 내가 혐오하는 사람의 자식이다
 
더러운 옷 보다는
더러운 피를 타고난
태생 같은
갈아입고 착하게 착실하게 다신 살 수 없을 거라고
되돌릴 수 없을 거 같다고 우는 날 보고
애인은 말한다
되돌릴 수 없는 건 없어
되돌릴 수 있는 건 없어
 
그녀의 음성에 내 피가 세탁되는 것 같았다
 
더러워진 옷을 세탁기가 빨아주는 것처럼
그녀는 나의 몸과 피를 깨끗이 빨아준다
 
벗어던질 수 없던 몸을 한 겹 벗겨내고 내가 새로 태어나는 거 같았다
 
아픈 기억은 더러운 옷처럼 벗어두고 맨몸으로 서로를 대할 수 있을까?

꿈속의 엄마


죽은 엄마를 떠올리는 화요일 아침. 이른 새벽 지저귀는 새도 엄마라고 생각했다. 엄마란 게 살아서는 죽은 것처럼 생각했었고 죽고 나니 매일 모든 만물로 되살아난다. 애인은 출근했다. 출근 전 애인 점심 도시락도 쌌다. 배웅도 마치고, 이제 부지런한 일정은 끝났으니 다시 게으르게 하루를 보내려 침대에 누워서 한참 핸드폰을 본다. 그러다 일어날 필요 없는 잠에 빠져들고 늦은 오후쯤 깨어나는 게 일상이 되었다.
엄마의 죽음은 나의 게으름에 정당한 핑곗거리가 되어줬다. 상실의 슬픔에 빠져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그런 사연 있는 사람으로 지낸 지난 1년. 어느 날은 설잠에 들었다가 우리 집에 있는 엄마를 보았다. 집안 여기저기를 구경하고 널브러진 물건들을 치우며 엄마가 말했다. “은재야. 빨래는 제때제때 하고 매일 청소기도 돌리고… 같이 사는 친구는 누구야?” 얼떨떨한 기분으로… “아, 응. 만난 지 일 년쯤 된 애인.” “아 그래? 너무 예쁘다. 우리 딸이랑 잘 어울리네.” “응. 좋은 사람이야.” “그래. 다행이다. 엄마는 네 걱정 많이 했어.” “죽어서나 내 걱정 하지.” “엄마는 사는 내내 네 걱정뿐이었어. 그걸 잘 표현하지 못해서 미안해.” “그건 너무 뒤늦은 거짓말 같은데.” “살아야 해서 너한테 손 벌리고 했었지…. 그게 지금도 미안해. 해준 것도 없고, 엄마 없이 크게 해서.” “나랑 같이 살았으면 됐잖아. 내가 그렇게 짐이었어?” “네가 그 집에 남는 게 더 편하게 살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어.” “그런 변명은 그만해…. 이 집이 싫어서 나가 놓고 내가 이 집에서 편하게 살 수 있을 거 같아서 두고 갔다는 그런, 속 편한 말 좀….” “그래 엄마가 미안해. 엄마도 혼자 살아 보는 게 처음이기도 하고 좀 무섭고 무책임했어. 인정할게.”
꿈속의 엄마는 간결했고 다정했고 인정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렇게 자주 엄마와 만났다.
어느 날은 해준 요리를 먹었고, 어떤 날은 여느 모녀와 다름없이 데이트를 했다. 그렇게 못 해본 것들을 하나씩 해보다 잠에서 깨어나면 오후 네 시. 눈을 떴다, 감았다. 웅크려 자느라 안으로 굽은 몸을 힘을 주어 바깥으로 펴낸다. 마디마디가 떨어지는 기분을 느끼며 찌뿌둥한 몸을 펴 바로 누웠다. “또 이 시간까지 잠만 잤네. 몇 시지….” 핸드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하는 무의미한 손길, 부스스하게 일어나 화장실에 간다. 손을 씻다 손에 남은 물로 대충 세수를 한다. “화이팅….” 내일부터는 잘 살자고 매너리즘에 빠진 심리 상담가 같은 얼굴로 대충 삶의 기합을 넣고. 퇴근하고 돌아올 애인을 기다린다. 철저히 누군가만 기다리며 보내는 버석한 시간.
나는 엄마를 혐오한다. 이 감정을 직면하기가 두렵다. 살아있지 않은 이를 혐오한다는 것은 알 수 없는 세계로 걸어가는 기분이다. 알 수 있는 게 뭐 있냐 싶다마는…. 엄마의 사치스러움도 싫었다. 빤짝거리는 액세서리, 알록달록한 옷가지들을 하루가 멀다 하고 사들이는 엄마. 아빠와 이혼 후 세 번의 이혼을 더 한 것도 싫었다. 남자에게 의지하는 엄마의 모습이 초라해 보였다. 당신 필요할 때만 얼굴을 바꾸는 그 간사함이 싫었다. 아쉬운 소리는 딸인 나에게만 쏟아내는 엄마가 버거웠다. 엄마가 죽었단 전화를 받기 전 꿈속에서 엄마를 만났다. 그 꿈에서 엄마는 젊었고 물리적으로 빛나고 있었고 온화한 미소를 띤 채 맛있는 걸 해주겠다고 이야기했다. 냉장고를 열어 채소 칸을 보여줬다. 전부 다 썩거나 곰팡이가 피어 엉망진창이었다. 흠칫한 나는 말했다. “나는 저것들로 만든 음식을 절대로 먹을 수 없어요.” 이런 꿈을 꾸고 일어나 엄마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엄마는 내게 꿈으로 말한다. 그래서 미운 마음들이 사라진다. 매일 죽은 엄마와 만나 나는 전에 하지 못한 것들을 하고 전에 듣지 못한 다정을 느끼며…. 나는 엄마를 사랑한다. 너무 보고 싶다. 그래서 보고픈 마음에 매일 엄마와 만난다.

최진아
태어났다. 살고 있다. 잃어버렸다. 찾아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