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입김의 시대

그는 원래도 푸른색이 싫었다. 곰팡이 같은 색. 버려진 화장실 타일 같은 색.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졌다. 붐비는 지하철 빈틈없이 얼굴을 덮는 마스크 속에서 주변을 조심스레 관찰한다. 마스크 아래의 입들을 상상한다. 살짝 벌어진 입 사이로 흘러나오는 숨. 그가 태어났을 때 그의 부모가 가장 먼저 확인했던 것이다. 그의 입김은 옅은 흰색이었다. 그들은 비로소 안도하는 탄식을 내뱉었다. 밀치는 사람들에게 밀려서 승강장을 빠져나오면서 마스크를 한 번 더 눌러 고정시킨다. 입김색 이유로 채용 거부.... 대법원 차별 첫 확정판결. 몇 해 전 그 애와 키스했다. 겨울이 될 때까지 기다렸어야 했다. 잠들었을 때 확인해 볼 수도 있었을 텐데. 그 애에게 개인적인 악감정이 있는 건 아니지만 먼저 밝혔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 애의 숨이 입안으로 들어왔다고 생각하면 아직도 역했다. 처음 보고된 지 삼십 년도 안 됐다. 지금 괜찮다고 앞으로도 괜찮을까. 목구멍부터 썩을 수도 있다. 거울 앞에서 입김을 확인하던 자신을 바라보던 그 애의 눈빛이 떠올랐다. 역 근처 식당은 소란스럽다. 화려한 간판 아래 입김 무관 환영 팻말과 한쪽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 실내에는 마스크 없이 벌린 입들로 가득 차 있다. 그는 숨을 참고 빠른 걸음으로 골목을 빠져나간다. 오피스텔 지하에서 엘리베이터가 올라온다. 문이 열리자 여자와 아이. 두 개의 벌린 입. 아이가 그에게 손을 흔든다. 멋쩍게 웃으며 그는 한 발 물러난다. 관리사무소에 메시지를 작성한다. 안전을 위해서 오피스텔 내 공용 공간 마스크 착용 의무 강화 시행 부탁드립니다. 학계 발표. 특정 병원체 미검출. 질환과의 연관성 없음. 집에 도착하자마자 코와 입을 세척하고 항균테라피 키트를 꺼낸다. 다음 주부터 기온이 큰 폭으로 떨어질 전망입니다. 추위에 대비하셔야겠습니다. 코와 입에 기계를 두른 채 그는 이직 사이트를 닫고 소개팅 앱을 연다. 첫 만남 장소는 테라스가 좋겠지. 곧 겨울이 올 것이다.

지나친 도


역할과 선택. 도에게는 그것이 중요했다. 모든 결과는 선택에서 시작되었고, 선택에는 책임이 따랐다. 그러니 오늘 이 자리도 선택의 일부이며 결과가 어떻게 되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개업한 지 얼마 되진 않았지만, 메종 클레르몽은 평이 좋았다. 첫 만남 장소로는 좋은 선택이었다. 무엇보다 친구가 소개한 사람이다. 도는 검증된 인맥을 신뢰했다. 사람을 직업으로 판단하진 않지만, 어떤 직업을 선택했는지는 그 사람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주니까. 사람들은 서로에게 도움이 될만한 사람들을 자신의 주변에 두게 되어 있다. 도 역시 그 원칙에 충실했고,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고 싶었다. 자부심을 가지고 관리하는 삶의 한 영역이니만큼 만족스러운 결과를 기대할 만하겠다고 도는 생각한다. 한 가지 걱정이라면 오기 전에 셔츠에 튀었던 커피 자국이 깔끔하게 지워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옷을 갈아입을 시간이 부족해 자켓을 걸치긴 했지만 완벽하게 가려지진 않았다. 핸드폰 카메라를 켜고 확인해 보는 도중 누군가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상대는 생각했던 것보다 키가 크고 얼굴은 비슷하지만 피부는 사진만큼 깨끗하지 않았다. 만약 상대가 관심을 보인다면 친구의 병원에서 할인된 가격으로 시술을 추천해 줘도 좋을 것이다. 직원가까지는 아니어도 꽤 할인받을 수 있을 테고 더 친해진다면 내가 선물로 끊어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이런 생각들 속에서 약간의 긴장과 안심이 주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고 도는 상대의 반응을 살피면서 가벼운 브런치 메뉴를 고른다. 직원은 주문을 받은 후 비워진 도의 물컵을 채우려다 실수로 테이블에 물을 흘린다. 옷이 젖은 것도 아니라서 웃으며 넘어간다. 오히려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가 사람을 보여주는 법이니까. 하지만 그 이후로도 나이프를 가져다주지 않아 다시 불러야 했고 차가운 커피 대신 뜨거운 커피를 가져다주었을 때는 인내심에 한계가 온다. 직원분이 일이 처음이신 것 같아요. 저는 그냥 마셔도 괜찮아요. 도의 표정을 살피며 상대는 분위기를 풀어보려 했으나 도는 그냥 넘어갈 수 없다. 그래도 서른은 넘어 보이는데 이 일을 처음 한다는 게 말이 되나. 처음이라면 더 집중해야 했다. 나이가 들수록 실수에는 변명의 여지가 줄어든다. 일단 웃으며 말을 돌렸지만, 화장실도 갈 겸 카운터에 들린다. 지금 좋은 분위기를 엉뚱한 것으로 깨뜨릴 순 없다. 제가 이런 말씀 잘 안 드리는데 서빙을 다른 분께 부탁드려도 될까요? 중요한 자리라서요.
 
도 씨는 식당에서 서빙 알바 해본 적 없으시죠? 상대는 성격이 무던한 것 같다. 웃을 때마다 가늘어지는 눈매가 볼수록 매력적이다. 서빙 알바는 해본 적 없지만 다른 알바는 했었죠. 과외를 오래 했어요. 제가 대학 때부터는 용돈 받은 적이 없었으니까. 도는 자신이 독립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다. 대학원도 그럼 직접 벌어서 가셨어요? 예상치 못한 질문이다. 도는 물을 한 모금 마신다. 대학원은 부모님이 좀 도와주셨죠. 그래도 공부는 제가 한 거니까요. 당황하긴 했지만, 상대가 학벌에 관심이 있어 보여 뿌듯하다. 특히 상대의 지적인 면이 마음에 든다. 대학 훌륭한 곳 나오셨던데요. 학벌이 전부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성실함을 보여주는 지표라고 생각해서요. 정말 멋지십니다. 상대는 도의 말에 아무 말 없이 웃는다. 도는 그 웃음이 조금 찝찝하다. 칭찬을 건넸으면 비슷한 것이 돌아오는 게 예의 아닌가. 그때 디저트를 들고 아까 그 직원이 다가온다. 맛있게 드세요. 표정이 차갑다. 사과할 생각은 없는 건가. 나를 무시하나. 도는 어이없다는 듯 한숨을 내쉰다. 직원이 떠나자 어색한 정적이 흐른다. 상대의 시선이 자신의 셔츠로 향하는 것 같다. 땀이 나지만 자켓 단추를 잠근다. 여기 좀 불편하시죠? 친구가 추천해 준 곳이라 괜찮을 줄 알았어요. 아는 분이 사장이라고 했거든요. 아무래도 오늘 일 얘기해야겠어요. 상대는 괜찮다며 손사래를 친다. 하지만 사람이 착하고 여유 있는 것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이렇게 매번 수용하고 이해하다가는 손해만 볼 것이다. 도는 문득 자신이 이 사람 곁에서 필요한 역할을 해줄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든다. 책임지게 해야죠. 실수도 선택이고 선택에는 결과가 따르는 법이니까요. 누군가는 그걸 알려줘야죠. 도는 냅킨으로 입을 닦는다. 말을 하고 나니 기분이 나아진다. 상대에게 자신의 믿음직한 면을 보여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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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리스펙토르의 문장을 생각했다. 
거울은 존재하는 공간 중 가장 깊은 곳이다. 
거울을 볼 때 나를 보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나를 제외한 공간에는 무엇이든 담길 수 있다. 
그곳을 천천히 채우며 시를 쓰고 있다.